장거리 백패킹을 하다 보면 풍경이 좋았던 순간이나 힘들었던 구간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은 특별하지 않았던 어느 순간의 감정이다.
그날은 날씨도 나쁘지 않았고, 일정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몸 상태도 견딜 만했다. 겉으로 보면 문제없는 하루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시간이 있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던 구간
한참을 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장거리 트레일은 혼자 걷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날은 유난히 정적이 길게 느껴졌다.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반복되다 보니 문득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조금 당황스러웠다.
괜히 휴대폰을 꺼내보던 순간
신호도 잘 잡히지 않는 구간이었는데, 괜히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딱히 연락이 올 것도 없었지만 습관처럼 확인했다.
평소에는 자연 속에서 연결이 끊기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오히려 어딘가와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 감정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졌다.
외로움은 힘듦과는 조금 달랐다
체력이 떨어질 때의 힘듦과는 달랐다. 다리가 아픈 것도, 어깨가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 순간에는 이 트레일을 끝까지 마치는 게 중요한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계획을 다시 떠올려보고,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며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날 저녁, 텐트 안에서
캠핑 지점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나서야 조금 안정이 됐다. 좁은 공간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누워서 하루를 정리하다 보니 그 외로움은 트레일 때문이라기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이 특별히 힘들었던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외로웠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정을 한 번 겪고 나니 이후의 혼자 걷는 시간은 조금 덜 낯설어졌다.
장거리 백패킹은 풍경이나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와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날의 외로움은 아마도 그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그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혹시 트레일 위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감정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