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백패킹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순간도 있다. 그 만남은 대부분 짧다. 이름을 묻지 않는 경우도 많고, 어디까지 가는지만 가볍게 묻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짧은 대화가 오래 남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잠깐 나란히 걷던 구간
완만한 오르막 구간에서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어느 순간 나란히 걷게 됐다.
“오늘 구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네요.”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도 웃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대화는 그 정도였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오늘 어디까지 갈 예정인지, 물은 충분한지.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각자의 속도로 걸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진 이유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혼자 걷던 시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남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됐다.
장거리 백패킹은 기본적으로 혼자의 시간이다. 모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 하고, 속도도, 휴식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그 책임이 익숙해질수록 고독도 함께 따라온다.
그런데 잠깐의 대화는 그 고독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지만, 잠시 나눠 가진다는 느낌을 줬다. 그게 생각보다 컸다.
각자의 방식으로 걷는 사람들
잠시 나란히 걷다가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다. 속도가 다르고, 목적지도 다르고, 걷는 이유도 다를 것이다.
그 사실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같은 길 위에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걷고 있다는 점이 이 트레일의 묘한 매력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달라진 점
그날 이후로는 누군가를 만나면 조금 더 먼저 인사를 건네보게 됐다. 길이 길수록, 사람 한 명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장거리 백패킹을 하면서 거창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많지 않다. 대신 이렇게 사소한 장면들이 천천히 생각을 바꾼다.
짧았지만 충분했던 만남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의 몇 마디 대화.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을 조금 따뜻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트레일은 결국 혼자 걷는 길이지만, 완전히 혼자인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들이 이 여정을 조금 덜 고독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구간을 떠올리면 풍경보다 먼저 그 짧은 대화가 생각난다. 장거리 백패킹에서 남는 건 거리보다도, 어쩌면 그런 순간들일지도 모르겠다.